친구와 만들던 게임이 하나 있다.
XCOM 스타일의 턴제 전술 게임인데,
꽤 오래 전부터 만들던 게임이지만 자원 부족으로 진행은 지지부진하고
아이디어에 대한 얘기만 오가는 상황이긴 하다.
뭐 그래도 계속 진행중이라는 게 중요하지.
생각이 든 건 이런 것이다.
게임이 플레이 중심이어야 할까, 스토리 중심이어야 할까, 아니면 둘 다 잡아야 할까?
이에 대한 논의도 GMTK 에서 몇 번 영상으로 본 적이 있다.
사실 나는 위 영상을 보고는,
한동안 게임에서 중요한 것은 게임플레이이며
스토리란 게임에서 분위기를 만들어줄 수는 있지만
핵심 요소는 아니라고 생각하던 적이 있다.
이것 때문에도 친구와 정말 많이 싸웠다.
존 카멕의 30년도 넘은 말을 믿고 산다면서,
나는 게임이 안 나오는데 스토리 같은 걸 줄창 신경쓰면
평생을 가도 게임 못 만든다면서 입이 닳도록 치고 받았더랜다.
여전히 나는 두 가치가 충돌한다면
스토리보다는 게임플레이를 고를 인물이긴 하지만,
스토리에 대한 평가는 비교적 최근에
"용과같이7"을 플레이하면서 바뀌었다.
사실 그 이전에도 스토리가 좋은 게임은 여럿 있었지만,
보다 본격적으로 게임에서 감동적인 스토리가 중요하다는 것은
용7을 플레이하면서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던 것 같다.
각설하고.
게이머가 게임에 재미를 느끼고 몰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여럿 있지만,
이번 글에서는 조금 한정하여보고자 한다.
이를테면 게이머, 즉 플레이어를 대신하는 캐릭터가 있는 게임이라고 하자.
이 경우 플레이어가 게임에 몰입한다는 것은,
자신을 대신한 캐릭터와 감정적으로 동기화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이전 포스트의 "록맨 X 시퀄라이티" 영상에서도 말하는 부분이다.
플레이어는 캐릭터 엑스와 감정적으로 동기화된 후,
캐릭터 제로가 되고 싶다(He's cool. I wanna be him)는 동기부여를 얻는다.
또한 엑스로서의 자신을 패버린 캐릭터 바바를 이기고 싶다는 목표를 얻는다.
게임이 제시하는 여러 고난들은 이런 목표를 강화하여 또 다른 동기를 부여하고,
이렇게 동기 부여된 플레이어는 게임에 몰입하여 실력을 키울 수 있으며
이렇게 성장한 실력으로 다음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긍정적 루프를 만든다.
서로가 제시하는 목표가 서로를 달성함으로써 얻게 되는 것이다.
록맨 X는 이런 목표-동기부여 의 루프가 매우 치밀하게 구성되어,
한 번 시작하면 정말 끝을 볼 때까지 달리게 되는 큰 재미를 자랑한다.
XCOM 류의 전술 게임에서는 또 다른 재미있는 게임 디자인이 있는데,
바로 게임의 모드가 두 개라는 것이다.
내가 XCOM에 대해 잘 모르던 시절엔 XCOM은 전투만 있는 게임인 줄 알았다.
지금의 나는 현재 XCOM: Enemy Within을 다음 정도로 클리어하는 수준의 유저다.
(1) 임파서블 모드
(2) 쉬움 + 철인 + 임파서블 이전의 모든 세컨드 웨이브 활성화
(3) 클래식 철인 모드
이제 나는 XCOM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생각하고,
그런 내게 요새 XCOM에서 게임 모드에 대한 내 생각을 묻는다면 이렇게 답할 것이다.
XCOM에서 전투가 꽃이라면, 경영은 줄기다.
어느 순간 XCOM에서 전투에 쓰는 시간 이상으로 경영에 할애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경영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다음 전투도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보통 난이도만 하던 내게 이런 상황은 처음에는 시련으로 여겨졌으나,
나중에 가서는 정말로 1$ 를 어떻게 써야 가능성이 높아지는지를 미친듯이 고민하게 되었다.
상점에서 시체를 사고팔고, 위성과 위성 업링크를 언제 지어야 하는지,
언제 요격기를 만들어야 하고 어떤 아이템을 사서 병사에게 입혀야 하는지를 매번 고민했다.
그리고 이 과정은 정말... 미친듯이 재미있었다.
기존의 경영이 전투만을 위한 재미없고 지루한 과정으로 여겨졌다면,
지금의 내게는 전투를 위해 경영을 하고, 경영을 위해 전투를 해야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전혀 다른 두 개의 게임이 서로의 목표가 되고 서로의 동기부여가 되는 시스템인 것이다.
한 번 맛들리면 정말 헤어나올 수가 없다.
록맨 X와 XCOM이 플레이어를 몰입시키는 방식은 판이하다.
록맨 X에서는 주인공 캐릭터 엑스를 내세우고, 엑스와 플레이어를 직접 동기화시킨다.
XCOM에서 플레이어는 사령관 캐릭터가 되지만, 인게임에서 사령관의 모습을 볼 일은 없다.
플레이어는 그저 자신을 사령관이라고 말하는 캐릭터로부터 보고를 받고 명령을 내릴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게임은 모두 충분히 몰입할만한 게임들로 여겨지는데,
이 게임들은 객관적으로 평가하자면 스토리보다는 치밀한 게임플레이가 몰입을 강화하는 게임들이다.
스토리가 중심인 게임은 어떠한가? 용과같이7은 어떠했나?
내 생각으로는 용과같이7이라는 게임은, 게임 자체의 메커니즘에 의한 재미보다는 스토리 측면의 재미가 훨씬 강하다.
전투는 일반적인 JRPG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전투 자체가 드래곤퀘스트를 오마주한 것이니 그럴 수 있다고 쳐도
이 게임에서의 전투가 다른 JRPG의 전투 대비하여 다른 재미가 있냐는 것엔 의문이다.
솔직히 전투는 인디 게임의 전설인 서프라이시아의 그것이 훨씬 더 깊이 있다고 생각한다.
놀라운 점은, 용과같이7 에서 제시하는 여러 종류의 미니 게임이 있는데
나는 거기서도 이치반 제과 경영 시뮬레이션에 정말 푹 빠져서 게임을 했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용과같이0 에서 마지마 고로가 되었을 때도 물장사 아일랜드에 푹 빠져있었는데,
어쩌면 그냥 그 당시에 내가 가장 좋아하던 게 XCOM 이고 그래서 그런 경영의 재미를 더 좋아했을 수도 있겠다.
하고자 하는 말은, 용과같이7 이라는 게임에서의 전투는 그렇게 큰 재미요소로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메인 스토리를 보여주고 싶을 때는 스토리를 강조하고 게임 플레이를 줄이고
게임이 하고 싶을 때는 스토리와 딱히 상관없이 게임 플레이를 강화하는, 그런 투 트랙 전략일 수도 있겠다.
게임 플레이와 스토리 진행이 양립할 수 없는 것이느냐 하는 의문에는,
다음 영상이 답을 줄 수 있겠다.
그러나 이 방식은 난이도가 높고, 사실 대단한 재능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따라할 수 있는 정도인지?
솔직한 감정으로는 자원이 허락한다면 자신있게 도전할 수 있겠으나 지금 상태로는 어림없다.
원래는 플레이어와 캐릭터 간의 감정적 동기화를 이야기하면서,
"플레이어가 캐릭터 그 자체"인 1인칭 시점의 게임에 비해
"플레이어와 캐릭터의 거리가 매우 먼 전지적 시점의 게임"인 XCOM 방식 게임을 할 때,
과연 플레이어가 게임의 스토리에 제대로 몰입할 수 있느냐에 대해
친구와 대화했던 내용을 정리해보려고 했는데,
글을 쓰면서 방향이 약간 변해버리는 바람에 이대로 이야기가 진행됐다.
게임이 스토리 중심이라면, 플레이어와 캐릭터가 감정적으로 훨씬 가까워야 한다는 것.
우리가 XCOM 같은 게임을 하면서 병사를 고기 방패로 내던질 수 있는 것,
스타크래프트를 하면서 마린을 서슴없이 사지로 내몰 수 있는 것은
플레이어가 그것을 게임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생각에서 출발했었다.
그런 부분에서 주인공을 누구로 설정하느냐, 스토리가 주제와 맞느냐 생각을 했었다.
그러다가 XCOM이라는 게임 디자인 자체가 어쩌면
"플레이어와 캐릭터의 거리가 너무 멀어서 스토리 몰입에 한계가 있지 않나?"
"혹시 내가 해가 없는 문제를 풀고 있는 게 아닌가? 게임 디자인의 변경이 필요한가?"
이런 고민까지 하게 되었던 것이다.
뭐... 글이 길어졌는데.
하튼 이런 것을 깊이 있게 고민해보고 있다.
시간은 충분하다. 더 생각하다보면 나름의 결론을 내릴 것으로 생각한다.
이번 오블완 챌린지를 하면서 내게 가장 가치 있는 글이 뭐냐 묻는다면
주저 없이 이 글을 고를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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